술 · 와인

파니엔테 (Far Niente), 나파밸리 오크빌 와이너리 이야기

좋은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파니엔테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2022를 마셨다. 이번에는 그 와인을 만든 파니엔테라는 와이너리를 찾아본 내용을 정리했다.

파니엔테 와이너리 정문

사진 출처: Sanfranman59,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오크빌 그레이드 길가의 파니엔테 정문. 문 가운데에 FN 글자가 들어가 있다.

골드러시의 남자와 돌 와이너리

이야기의 주인공은 존 벤슨 (John Benson)이다. 와이너리 연표를 보면 벤슨은 골드러시 때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온 부동산 투자자였다. 1880년에 그는 나파밸리 오크빌 (Oakville)의 농장 216에이커를 사들였고 이 땅에 파니엔테라는 이름을 붙였다.

벤슨은 포도나무 6만 그루를 심었다. 와인도 만들고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를 길러 건포도와 생식용 포도로도 팔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양조장을 짓기로 했다.

벤슨은 건축가 해믄 매킨타이어 (Hamden McIntyre)에게 설계를 맡겼다. 매킨타이어는 포도와 와인이 중력을 따라 아래층으로 흘러가는 돌 양조장을 지었다. 공사는 1885년에서 1886년 사이에 끝났다. 와이너리는 지금도 1885년을 설립 연도로 쓴다.

1886년에 첫 공식 빈티지가 병에 담겼다. 와이너리는 그 라벨을 벤슨의 조카인 화가 윈슬로 호머가 그렸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시절 와인은 백 년 넘게 지나 다시 나타났다. 1998년 마린 카운티의 한 와인 셀러에서 1886년 파니엔테 스위트 머스캣 한 병이 나왔는데, 코르크와 캡슐, 라벨이 처음 그대로였다고 한다.

금주법, 그리고 버려진 60년

벤슨은 1910년에 세상을 떠났고 와이너리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1919년에 금주법이 시작됐다. 와인을 만들 수 없게 되자 파니엔테는 문을 닫았고 돌 건물은 그대로 버려졌다.

1933년에 금주법이 끝나고 잠깐 와인을 만든 적은 있었다고 와이너리는 적고 있다. 같은 무렵 샌프란시스코의 부동산 거물 마틴 스텔링 주니어 (Martin Stelling Jr.)가 이 땅을 샀다. 스텔링은 1944년에 토 칼론 (To Kalon) 농장까지 사들였고 한때 나파밸리 땅 5천 에이커를 가졌다.

하지만 스텔링은 1950년에 세상을 떠났다. 땅은 가족의 신탁으로 넘어갔고 돌 건물은 다시 손길 없이 남았다. 창문도 수도도 전기도 없고 지붕은 무너져 가는 건물이었다. 금주법부터 따지면 거의 60년을 빈 채로 있었던 셈이다.

1961년 오크빌 근처의 나파밸리

사진 출처: roger4336,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1961년 가을, 오크빌 근처의 나파밸리. 파니엔테 건물이 비어 있던 시절의 풍경이다.

길 니켈이 돌아오게 한 건물

건물을 되살린 사람은 길 니켈 (Gil Nickel)이다. 1939년 오클라호마 머스코지에서 조경용 묘목 농장을 하는 집안에 태어났다. 대학에서 물리와 수학을 공부했고 캘리포니아에서 미 해군 유도 미사일 분석가로 일했다. 고향의 가족 묘목 사업으로 돌아갔다가 1976년에 와이너리를 차리려고 다시 캘리포니아로 왔다.

1979년, 니켈은 나파밸리에서 버려진 돌 건물을 발견했다. 그는 땅 주인이던 마틴 스텔링의 아들 더그 스텔링을 설득해 함께 와이너리를 되살리기로 했다. 60년 가까이 비어 있던 건물을 니켈은 3년에 걸쳐 19세기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지붕에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오래된 기와를 얹었고 둘레에는 계단식 정원을 꾸몄다. 이 건물은 지금 미국 국가 사적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에 올라 있다.

와인은 건물보다 먼저 나왔다. 금주법 이후 첫 파니엔테 와인인 1979년 샤도네이는 소살리토에 빌린 공간에서 만들었다. 1982년이 되어서야 복원한 와이너리에서 샤도네이와 첫 카베르네 소비뇽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카베르네는 전부 스텔링 포도밭 포도로 만들었다.

베스 니켈은 이 이야기에 조금 늦게 들어온다. 길과 베스는 1996년에 와이너리 정원에서 결혼했다. 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베스가 그의 이름을 이어 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파니엔테라는 이름은 벤슨이 붙였다. 이탈리아어 “돌체 파 니엔테 (dolce far niente)“에서 왔다. 직역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이고 와이너리는 흔히 “걱정 없이”라고 옮긴다.

이 이름은 복원 공사 중에 다시 나타났다. 공사하던 사람들이 건물 앞쪽 돌에 새겨진 “Far Niente” 글자를 찾아낸 것이다. 버려진 60년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이름을 그대로 와이너리 이름으로 다시 썼다.

언덕 속 동굴

건물 복원이 끝나자 니켈은 땅 아래로 눈을 돌렸다. 1980년에 건축업자 알프 버틀슨 (Alf Burtleson)이 와이너리 뒤 언덕에 동굴을 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60피트 길이의 굴 하나였다.

와이너리는 이를 나파밸리 첫 현대식 와인 동굴이라고 소개한다. 나파 와이너리 자료를 모은 나파 와인 프로젝트는 조금 조심스럽게, 금주법 이후 나파밸리에 판 첫 상업용 동굴 가운데 하나라고 적었다.

동굴은 그 뒤로 계속 넓어졌다. 1989년에는 부르고뉴와 보르도 저장고를 본뜬 둥근 통로를 냈다. 1995년에서 1998년 사이에 동굴 두 개와 돌을 깎아 만든 와인 라이브러리가 더해졌고 2001년에 마지막 1만 제곱피트를 끝냈다. 지금 파니엔테 동굴은 4만 제곱피트가 넘는다.

두 가지 와인과 자매 와이너리

파니엔테는 지금도 샤도네이와 카베르네 소비뇽 두 가지만 만든다. 다른 와인은 아예 다른 와이너리를 따로 세워서 만들었다.

  1. 돌체 (Dolce): 샤토 디켐을 본뜬 늦수확 스위트 와인. 귀부 곰팡이가 낀 세미용과 소비뇽 블랑으로 만든다. 첫 빈티지는 자료에 따라 1985년에서 1989년 사이로 나온다. 1990년 무렵 따로 독립해 늦수확 와인 한 가지만 만드는 와이너리가 됐다.

  2. 니켈 앤 니켈 (Nickel & Nickel): 1997년 첫 빈티지. 한 포도밭에서 한 품종만 100% 쓴 싱글 빈야드 와인을 만든다. 1880년대 설리너 (Sullenger) 농가를 고쳐 와이너리로 쓰고 2003년 7월에 문을 열었다.

  3. 엔루트 (EnRoute): 2005년에 만든 피노 누아 브랜드.

  4. 벨라 유니언 (Bella Union): 2012년에 시작한 브랜드. 2024년 9월 러더퍼드에 와이너리를 열었다.

와이너리 누리집에는 포스트 앤 빔 (Post & Beam)까지 여섯 곳이 한 가족으로 올라 있다.

포도밭 땅을 아끼려는 시도도 있었다. 2008년 파니엔테는 포도밭 사이 관개용 연못 위에 태양광 패널을 띄웠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이를 실험용이 아닌 세계 첫 수상 태양광 설비로 소개했다. 패널 2,296장 가운데 994장이 연못 위에 떠 있다. 땅에만 깔면 포도밭 2에이커쯤을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파니엔테 포도밭 사이 연못 위의 태양광 패널

사진 출처: SPG Solar,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포도밭 한가운데 연못을 덮은 태양광 패널. 아래쪽에는 땅에 세운 패널이 보인다.

길 니켈 이후

길 니켈은 1998년에 흑색종 진단을 받았다. 5년 가까이 병과 싸우다 2003년 10월 30일에 64살로 세상을 떠났다. 니켈 앤 니켈이 문을 연 지 석 달 남짓 지난 때였다. 와이너리는 아내 베스와 동업자들이 이어받았다.

이듬해인 2004년, 파니엔테는 25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일반 방문객에게 문을 열었다. 베스 니켈은 남편 이름을 붙인 UCLA 암센터 연구 기금으로 100만 달러를 모았다.

주인도 차츰 바뀌었다. 2016년 사모펀드 GI 파트너스가 파니엔테 와인 에스테이츠의 지분 과반을 샀다. 파니엔테와 함께 니켈 앤 니켈, 엔루트, 벨라 유니언, 돌체가 모두 들어간 거래였다. 2022년에는 에이팩스 파트너스 (Apax Partners)도 투자했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파니엔테는 지금도 1885년이라는 숫자를 라벨에 적고 오크빌의 돌 건물과 언덕 속 동굴에서 와인을 만든다.


** 모든 술은 직접 조사하고 마셔 본 뒤 개인적인 생각으로 쓴 글이며, 해당 술의 일반적인 평가는 아닙니다. 술의 향이나 맛은 시기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참고: Far Niente, Our History, Far Niente, Restoration & Renovation, Wikipedia, Far Niente Winery, Wine Folly, Far Niente Winery, The Napa Wine Project, Far Niente, Wine Spectator, Owner of Far Niente, Gil Nickel, Succumbs To Cancer, Scientific American, Putting Solar Panels on Water Is a Great Id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