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스 원 (Opus One) 이야기
얼마 전 오퍼스 원의 세컨드 와인인 오버추어를 마셨다. 이번에는 그 와인을 만든 오퍼스 원이라는 와이너리를 찾아본 내용을 정리했다.

사진 출처: Lyn Gateley, Wikimedia Commons, CC BY 2.0
나파 밸리 오크빌의 오퍼스 원 와이너리 입구.
하와이에서의 첫 만남
이야기는 1970년 하와이에서 시작된다. 빅아일랜드의 마우나 케아 비치 호텔에서 와인·주류 업계 모임이 열렸고 거기서 나파 밸리의 로버트 몬다비 (Robert Mondavi)와 보르도 샤토 무통 로칠드의 필립 드 로칠드 남작 (Baron Philippe de Rothschild)이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함께 와인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때가 일렀다. 몬다비는 집안 형제와 다투느라 정신이 없었고, 로칠드 남작은 무통 로칠드를 1등급으로 올리는 일에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몇 년 동안 묻혀 있었다.
다시 움직인 건 1978년이다. 로칠드 남작이 몬다비를 보르도의 무통 로칠드로 불렀다. 다음 날 아침 몬다비가 남작의 사무실로 찾아가자 집사가 남작은 침실에서 일한다고 알려 줬다고 한다. 그날 두 사람은 반반씩 소유하는 합작의 큰 틀을 정했다.
두 사람이 한 와인을
첫 빈티지는 1979년이다. 아직 와이너리 건물이 없어서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에서 만들었고 포도도 몬다비의 토 칼론 (To Kalon) 포도밭에서 가져왔다. 오크통은 무통 쪽에서 보냈다.
양조는 무통에서 건너온 뤼시앵 시오노 (Lucien Sionneau)와 몬다비의 아들 팀 몬다비 (Tim Mondavi)가 맡았다. 처음에 두 사람은 각자 따로 블렌딩한 와인을 들고 왔다. 몬다비는 둘 다 돌려보내며 다시 들어가서 하나를 같이 만들라고 했다. 프랑스와 미국 와인메이커가 나란히 일하는 방식은 그때부터 이어지고 있다.
합작은 1980년에 공식 발표됐다. 같은 해 몬다비는 토 칼론 포도밭 가운데 약 35에이커를 합작 회사에 팔았다.
와인이 처음 세상에 나온 건 1981년 7월 나파 밸리 와인 경매에서였다. 마지막 경매품으로 나온 한 케이스가 2만 4,500달러에 팔렸다. 당시 미국 와인에 매겨진 값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이었다.
정식 출시는 그보다 늦었다. 1979년과 1980년 빈티지가 1984년에 함께 나왔다.
이름과 두 옆얼굴
경매에 나갈 때만 해도 와인 이름은 나파메독 (NapaMédoc)이었다. 나파와 보르도 메독을 붙인 이름이다. 이름을 두고 한 해 가까이 의견이 오갔다.
결론은 파리에서 걸려 온 전화로 났다. 로칠드 남작이 오퍼스 (Opus)를 제안했고, 몬다비의 아내 마그리트가 뒤에 원 (One)을 붙였다. 오퍼스는 음악에서 작품을 뜻하고 오퍼스 원은 작곡가의 첫 작품이라는 뜻이다. 와인 하나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뜻을 담았다. 이름이 정해진 건 1982년이다.
라벨은 디자이너 수전 페이트 (Susan Pate)가 맡았다. 그는 무통까지 건너가 두 사람이 모두 좋다고 할 때까지 200개 넘는 시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 출처: Diego Cosenza, Wikimedia Commons, CC BY 2.0
오퍼스 원 1997 라벨. 위쪽에 두 사람의 옆얼굴, 아래쪽에 두 사람의 서명이 있다.
그렇게 나온 라벨이 서로 등을 맞댄 두 사람의 옆얼굴이다. 한쪽은 몬다비, 다른 한쪽은 로칠드 남작이다. 아래에는 두 사람의 서명이 나란히 들어간다.
메독의 샤토를 닮은 건물
오퍼스 원은 처음 10년 넘게 몬다비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들었다. 자기 건물을 갖게 된 건 1991년이다.
설계는 건축가 스콧 존슨 (Scott Johnson)이 맡았다. 1989년 7월에 땅을 팠고 1991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그해 수확한 포도가 새 건물에서 처음 만든 와인이 됐고 1991년 빈티지는 1994년에 출시됐다.

사진 출처: Jim G, Wikimedia Commons, CC BY 2.0
와이너리 앞마당. 양옆으로 반원을 그리며 건물이 이어진다.
건물은 석회암으로 지었고 넓이는 약 8만 제곱피트다. 아치가 이어지는 회랑과 기둥을 두른 마당을 두어 메독의 오래된 샤토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면서도 낮게 깔린 모양이라 포도밭 속에 반쯤 묻힌 것처럼 보이게 설계했다.
땅을 파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일대는 지하수 높이가 높고 근처 온천 때문에 땅도 따뜻했다. 건물은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 바로 맞은편에 있다.
오크빌의 네 구획
오퍼스 원 포도밭은 오크빌 서쪽에 있는 네 구획으로 이뤄져 있다. 두 구획은 토 칼론 포도밭 안에 있고 나머지 발레스트라 (Ballestra)와 리버 (River) 구획은 와이너리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사진 출처: Lyn Gateley, Wikimedia Commons, CC BY 2.0
와이너리 건물에서 내려다본 포도밭.
포도는 보르도와 같은 다섯 품종을 쓴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말벡, 쁘띠 베르도를 섞는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유기농 인증 기준에 맞춰 농사를 짓는다. 와이너리와 포도밭 양쪽에서 나파 그린 인증을 처음 받은 곳도 오퍼스 원이라고 한다.
와인은 새 프렌치 오크통에서 18개월 숙성한 뒤 병에 담는다. 그리고 병 속에서 15개월을 더 기다렸다가 출시한다.
주인이 바뀌어도
2004년에 큰 변화가 있었다. 컨스텔레이션 브랜즈 (Constellation Brands)가 로버트 몬다비 회사를 인수했고 몬다비 쪽이 가지고 있던 오퍼스 원 지분 절반도 함께 넘어갔다. 로칠드 남작 쪽 절반은 남작의 딸 필리핀 드 로칠드가 물려받은 상태였다.
한동안 어느 한쪽이 나머지 절반을 사들일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결론은 2005년 9월에 나왔다. 컨스텔레이션과 필리핀 드 로칠드는 오퍼스 원을 계속 반반씩 함께 가지기로 했다. 대신 오퍼스 원은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에서 떨어져 더 독립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보르도를 거쳐 세계로
파는 방식도 이 무렵 바뀌었다. 보르도에는 라 플라스 드 보르도 (La Place de Bordeaux)라는 오래된 유통 구조가 있다. 샤토가 와인을 직접 팔지 않고 네고시앙이라는 중개 상인들에게 넘기면, 네고시앙이 전 세계 수입상에게 판다.
이 시장은 오랫동안 보르도 와인만 다뤘다. 처음 문을 연 건 무통 로칠드의 필리핀 드 로칠드가 칠레에서 만든 알마비바로, 1998년이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04년에 오퍼스 원도 라 플라스에 올랐다. 나파 와인이 보르도 상인들의 손을 거쳐 세계로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퍼스 원과 오버추어
오퍼스 원은 처음부터 와인 하나만 내세우는 와이너리였다. 그렇다고 와인이 하나뿐인 건 아니다. 보르도 샤토처럼 1993년부터 세컨드 와인 오버추어 (Overture)를 만든다. 서곡이라는 뜻이니 이름도 오퍼스와 짝을 맞췄다.
오버추어는 오랫동안 여러 해 와인을 섞은 멀티 빈티지로 나왔다. 2021년부터는 빈티지를 적어서 낸다. 자세한 이야기는 오버추어 글에 썼다.
** 모든 술은 직접 조사하고 마셔 본 뒤 개인적인 생각으로 쓴 글이며, 해당 술의 일반적인 평가는 아닙니다. 술의 향이나 맛은 시기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참고: Opus One, The Estate, Opus One, Who was Baron Philippe de Rothschild?, Opus One, Who was Robert Mondavi?, Opus One, Overture, Wikipedia, Opus One Winery, Jane Anson, The origin story of Opus One, Wine Spectator, Opus on Its Own, Wine Spectator, Want Top Wines from Napa? Buy from Bordeaux